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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채권자에게 쫓기며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급기야 여러 번의 죽음을 선택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문득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자신을 태어나게 했다면 자신은 분명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믿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삶을 선택하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대의 끝자락을 남겨놓은 시점에 그렇게 빛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뉴 밀레니엄인 2000년 빚진 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의 대표가 되어 신용카드 길거리 모집을 불법화 시키며 대중 앞에 나타났다. 빚, 채무, 신용불량, 과중채무, 자살, 삶 등 폭넓은 범주를 다루며 채무자의 살 권리를 외쳤다. 수천 명의 채무자를 만나 직접 그들의 고충을 듣고 밤새워 함께 해법을 모색했다. 연대보증제도의 폐지를 주장했고, 불법 채권추심을 반대했으며 채무상담기구의 설치와 새로운 이자제한법을 제안하였다. 현재의 신용회복위원회와 대부업법, 개인파산법도 그때 그가 일조한 결과물중 하나다. 1999년 30대 초에 시작된 그의 공생(公生)은 2008년 40대 초 여름이 끝날 때쯤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끝나버렸다. 그 후에도 그가 만든 단체는 한동안 그 명맥을 유지했으나 사회적으론 무의미했다.

 

그렇게 홀연히 시민사회 영역을 떠난 그는 보다나은 세상의 모델로 공동체를 생각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꿈을 지지, 응원하고 서로의 역량을 계발, 지원하며 어른들은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서로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르치며 자기소유가 없는, 자본보다 인본이 더 중요한 세상이 그가 꿈꾸던 공동체의 모델이었을 꺼다. 각자 더 많이 벌어야하는 경쟁하는 세상, 승자독식의 세상이나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도와 더불어 삶을 도모하는 세상 말이다. 그가 한국에 맞는 한국의 공동체를 찾는 약 10여년의 여정 중에 공동체적 삶을 위해 공동체 마다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프로그램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동체 영성과 깊은 조우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더 나은 세상의 실현은 많은 사람들의 영적 수준이 향상될 때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성을 넘어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면 생각과 마음의 문이 열리고 공동체를 살아가는 것은 물론, 더 나은 세상의 실현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시민사회를 떠나고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 그는 영성, 치유, 명상, 힐링이란 주제로 새로운 공생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그가 빚을 청산하고 심리적 자유를 얻기까지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그가 깨달음을 얻어 영적 자유를 얻기까지의 경험도 비슷한 고민을 짊어진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빚(채무)에 대한 쓰라린 경험 경험이 사회적 자본이 되었듯, 이제 빛(존재)에 대한 그의 개인적 경험도 다시 사회적 자본이 되어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공부법, 프로그램, 세션 등 깨달음에 필요한 다양한 수단과 방법, 필요한 용품들을 만들고 유통하시는 분들은 더 깊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중시하다보니 홍보나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의 어려움은 깨달음을 원하시는 개인이 깨달음의 길을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바니하는 공부법을 알리고 개인 각각이 공부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받도록 하는 기본 목적에 충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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